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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 Amish 문화 공감
코로나 팬데믹과 아미쉬 공동체 본문
친척과 이웃들의 잦은 만남을 통한 대면 친교를 공동체 가치의 최우선적 요소로
삼고 있는 아미쉬 공동체 특성상 '사회적 거리 두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가던 2020년 초, 아미쉬 공동체는 다시 뉴스에 조명되기 시작하였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취약한 고위험 집단으로 지목되면서다. 세간의 그러한 예측과 눈총을 탓할 수는 없었다. 돌림병인 코로나 확산 예방의 핵심 준칙인 ‘개인위생 관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 그리고 ‘백신 접종’까지 세 가지 모두가 다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한테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에 보건 관리 당국과 관련 단체가 발 벗고 나서 아미쉬 공동체에 대한 선제적 예방조치에 나섰다. 하지만 예상되었던 대로 그들의 깊은 신앙적 믿음과 오랜 관습에 뿌리를 둔 그들만의 소신에 부딪혔다. 스마트폰은 물론 TV와 라디오도 없어 세상 소식에 둔감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의 심각성과 예방수칙 등을 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미쉬 주교를 방문하여 교구 내 전파를 당부하였고, 아미쉬들이 자주 드나드는 상점에 전단을 붙이거나, 우편으로 가정 통신문을 보내고 아미쉬 공동체 신문과 잡지에 광고성 안내문을 올려 알리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점은 '사회적 거리 두기'였다. 한 가정에 7-10명에 이르는 대가족인데다 친척과 이웃들의 잦은 만남을 통한 대면 친교를 공동체 가치의 최우선적 요소로 삼고 있는 아미쉬 공동체의 특성상 '사회적 거리 두기'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게다가 현대 의술의 처치보다는 전통 민간요법을 우선시하는 오랜 관습을 고집하는 그들에게 '백신 접종' 등 의학적 처치를 강제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방역 수칙에 역행하는 일로써 공동체 안에서는 물론 주변 일반사회로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두려움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나 또한 아미쉬 공동체의 그러한 특성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남들보다도 그들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았다. 아미쉬 마을로 향하던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멈췄고, 그날부터 ‘아미쉬와 코로나’가 나의 주된 검색어가 되었다. 그것만이 코로나 팬데믹을 견뎌내는 아미쉬 공동체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코로나 초기 단계에는 아미쉬 공동체의 봄철 기금 모금 행사가 취소되고 교회 모임도 일시적이나마 중단하기로 하였다는 소식에 안도하였다. 그러나 당국의 방역지침에 따라 다수가 모이는 행사나 집회는 중단하였지만 매년 두 차례 봄, 가을로 열리는 성찬 예배만큼은 거를 수 없었고, 조문객들을 제한하였다지만 아미쉬 관습에 따른 장례식 또한 계속되었다. 시시각각 늘어나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와 희생자 수가 발표되고 급증하는 사망자의 장례마저 제때 치러지지 못한다는 뉴욕발 기사와 사진 속 처참함에 공포감을 느끼며 아미쉬 공동체 안의 상황에 답답해하였다. 아미쉬 공동체를 분리해 조사된 감염자 수치는 기대할 수도 없고, 아미쉬 공동체 신문마저도 코로나에 관한 소식은 감감하였다. 희생자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마저도 널리 알릴 일이 아니라는 것인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지목하며 눈총을 보내고 있을 때,
아미쉬들은 마스크가 부족하여 손수건으로 입을 감싸고 나다니는
공동체 바깥세상 사람들을 위해 마스크를 직접 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근황이 궁금하여 두어 차례 음성 메시지를 남긴 끝에 가까운 아미쉬 지인과 직접 통화를 할 수 있었다. 70대 중반의 아미쉬 원로 스톨츠푸스 Stoltzfus 씨의 목소리는 매우 밝았다. 주변에 몇 사람이 코로나 증상을 보였지만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며 오히려 나를 걱정하였다. 나의 직장 상황을 궁금해하며 마스크는 충분히 있느냐고 물었다. 공동체 여성들이 재봉틀을 돌리고 직접 손바느질로 마무리하여 만든 마스크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인근 의료기관 종사자들을 위해 만들어 기부하고 필요한 이웃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있으니 걱정 말고 연락하라고 하였다. 병원 의료진들의 마스크마저 부족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여러 지역의 아미쉬 공동체 여인들이 마스크를 만들어 기부하고 있다는 뉴스들을 사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을 고위험 집단으로 지목하며 눈총을 보내고 있을 때,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마스크가 부족하여 손수건으로 입을 감싸고 나다니는 공동체 바깥세상 사람들을 위해 마스크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한테서 그 어떠한 위기 상황이나 긴장감을 감지할 수 없었다.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힘을 모으는 여유에 다소간의 걱정을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그 후로도 끊임없이 이어진 아미쉬와 코로나 유행병에 관련된 여러 뉴스 속에 많은 사람의 우려와 달리 아미쉬 공동체 그 어느 곳에서도 크게 걱정할 만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한 해를 넘기면서 아미쉬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고위험군으로 지목된 아미쉬 공동체에서 예견되었던 바이러스 감염 확산과 희생자 속출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고 있음에 세상 사람들은 의아해하였다. 감염의 두려움에 모두가 움츠리고 있는 바깥세상과는 달리 이렇다 할 큰 소란 없이 차분히 코로나의 공포를 이겨내고 있는 연유가 궁금해진 것이었다.
“집단면역은 매우 이례적이지만 가능한 일이며,
아마도 아미쉬 공동체가 미국에서 첫 번째 집단면역을 이룬 집단이 될 것이다”
- 에릭 로프그렌 Eric Lofgren 박사, 워싱턴 주립 대학 부교수, 전염병 학자
보건 당국과 인근 병원 의료진에 의하면 아미쉬 공동체에서 실제로 감염자가 많이 발생하였고, 이는 봄, 가을 두 차례 열리는 성찬 예배 시기에 쓰나미처럼 지나갔다고 한다. 성찬 예배 의식 중 포도주가 담긴 잔을 돌려가며 입에 대는 관습을 그대로 따른 것이 주된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아미쉬 공동체의 90% 정도 가정에서 최소한 한 명 이상의 감염자가 발생하였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집단면역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결론을 짓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워싱턴 주립 대학의 전염병 학자인 에릭 로프그렌 Eric Lofgren 박사도 ‘집단면역은 매우 이례적이지만 가능한 일이며, 아마도 아미쉬 공동체가 미국에서 첫 번째 집단면역을 이룬 집단이 될 것이다‘라며 아미쉬 공동체가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해 낸 결정적 요인은 집단면역일 것으로 보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리고 2021년 6월에 다른 연구팀에 의해 발표된 의학 연구논문 “Closed but Not Protected: Excess Deaths Between the Amish and Mennonites during the COVID-19 Pandemic”에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공동체의 ’초과 사망률‘이 미국 전체의 추세와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초과 사망‘이란 ’질병이나 특정 유해 사건의 영향을 보여줄 수 있는 수치로 정상적인 상황에서 예상되는 사망자 수보다 높은 사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아미쉬 공동체에서 평상시보다 증가한 사망률이 미국 전체에 비하여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으로 겪은 피해의 크기가 다르지 않다고 하여 그 과정에서의 대처 방법이 무시될 수는 없을 것이고, 대처 방법에 대해 옳고 그름에도 다양한 판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통하여 세간의 우려와 달리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신념과 공동체 정신에 따른 자기들의 방식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이겨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아미쉬, 그들이 보통 사람이 되는 그런 세상은 올 수 없다 하더라도
지구상 온 인류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
세상 사람들이 코로나에 감염된 가족을 역병 환자로 여기며 다른 방에 격리하여 음식을 넣어주고 돌아서 손을 씻을 때 그들은 아픈 가족을 안고서 미음을 떠먹이고 따뜻한 차를 우려 목을 적셔주며 같이 아파했다. 우리가 코로나 확진자에게 ‘n 차 감염자’라는 꼬리표를 붙여 멀리하고 그들의 행적을 쫓아 접촉자들을 찾는 데 힘을 쏟을 때 그들은 증상이 있는 이웃에게 따뜻한 치킨 누들 수프를 만들어 찾아가 함께 식사하며 북돋워 주었다. 요양 시설에 위탁한 후 오랜 기간 상면하지 못한 노모와 유리창 사이로 손바닥을 비비며 애타게 이름을 부르는 자식들의 눈물겨운 모습에 우리 모두가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붉힐 때 그들은 노부모를 한 지붕 아래 모시고 자녀 손주들이 드나들며 식사를 챙겨드리고 씻겨드리며 손수 보살폈다. 많은 직장 동료들이 재택근무로 뿔뿔이 흩어져 모니터를 보며 업무를 처리할 때 그들은 이웃들과 모여앉아 바깥세상 사람들을 위해 마스크를 만들었다. 이처럼 그들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따뜻한 혈온이 흐르는 ‘형제애 brotherhood’로 안아주고 서로의 아픔을 감싸며 함께 극복해 나갔다.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가 가라앉고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얻은 것과 잃은 것에 대한 손익계산에 분주하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조명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대안을 찾아 교훈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을 통하여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 겪었던 상황과 대처 과정, 그리고 극복 요인 등에 관한 전문가들의 심층 분석도 뒤따르리라 예상하며 나는 이를 고대하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가 겸허히 받아들일 일깨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난 후, 300여 년간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굳건히 지켜온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공동체 정신이 더욱 공고히 확장되어가기를 바라는 나의 바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아미쉬, 그들이 보통 사람이 되는 그런 세상은 올 수 없다 하더라도 지구상 온 인류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 잘못 나가고 있는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그들이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미쉬 고찰 - 임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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