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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 젊은이의 외롭고 힘든 결단 - 영화 ‘룸슈프링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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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 젊은이의 외롭고 힘든 결단 - 영화 ‘룸슈프링아’

amishstudy 2023. 7. 19. 11:05
아미쉬 공동체 젊은이들의 '통과 의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영화 ‘룸슈프링아 Rumspriga‘를 보고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 amishstudy 임세근

“두 분 말씀대로 배를 탈 걸 그랬어요. 비행기는 세상 최악의 발명품이에요.”                                                                        착륙을 위한 하강 중 아미쉬 총각 제이콥이 가빠진 호흡에 힘들어하며 내뱉는 후회 섞인 푸념이다. 비 내리는 베를린 공항에서 택시를 잡는 젊은 여성을 도와주다가 자신의 마대 麻袋 마저 실려 보낸다. 모든 소지품을 잃어버리고 마중 나오기로 한 인척과도 길이 어긋난 그는 갈 곳을 잃고 시가지를 배회한다. 밀짚모자에 멜빵바지를 입은 젊은이를 발견하고는 자신처럼 ‘룸슈프링아’ 기간에 있는 아미쉬로 오인하며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조상의 나라 독일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 공동체 바깥세상을 경험하기 위하여 미국 펜실베이니아를 떠난 아미쉬 총각 제이콥 호스테틀러의 험난한 여정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Rumspringa – An Amish in Berlin’은 이렇게 시작한다.

 

배구경기를 즐기고 있는 아미쉬 젊은이들

 ‘롬슈프링아’는 펜실베이니아 독일계 이주민의 독일어 방언 Rumspringa (미국 영어 발음, 럼스프린가)의 독일식 발음에 충실한 우리 말 표기이다. 원래 의미는 ‘running around (이리저리 뛰어다니기)’이며, 아미쉬 공동체 젊은이들이 세례를 받기 전에 거치는 통과 의례 기간을 말한다. 이때 아미쉬 젊은이들은 공동체를 떠나 바깥세상의 문화와 세상 사람들의 삶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그 대가로 그들은 세례를 받고 공동체 일원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공동체를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인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맞닥뜨린다.

 

길거리에서 만난 멜빵바지 친구 알프는 그날그날 쾌락을 좇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흐릿해 보이는 학생이다. 반면에 공항 택시 승차장에서 도움을 주었던 미모의 여성 아나는 혼란스러웠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이상주의적 삶을 추구하는 전문직 여성이다. 그들은 때로 제이콥을 어항 밖 물고기로 만들어 우스개로 삼고, 벼랑 끝으로 몰아 신앙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깥세상을 두루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돕고,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제이콥의 손을 잡아준다. 알프가 제이콥이 모르고 있던 세상에 눈을 뜨게 하였다면 이나는 제이콥이 억눌러왔던 욕정을 흩트리는 장을 펼쳐준다. 

 

하지만 그때마다 제이콥은 세상의 짜릿함에 혼란스러워하며 남몰래 죄의식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이 범한 죄악을 하얀 널빤지에 기록한다.    ‘비디오 게임’ ‘롤러 스케이터’ ‘파티’ ‘마약’ ‘알코올’ ‘댄싱’ ‘차 운전’ ‘포르노’ ‘섹스’

아나가 기획한 미술품전시회에 초대받은 날, 제이콥은 이 하얀 널빤지가 예술 작품으로 전시되어있고, 자신은 아미쉬 아티스트로 변해있는 사실 앞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벌거벗겨진 채 심판대에 올려진 자신의 고해성사를 감추려 몸부림치다가 작품이 고가에 낙찰되었음을 알게 된다. 아나를 향한 노여움을 억누르며 제이콥은 괴로워한다. 그리고 아버지 장례식에 조문을 하지 못한데 그에게 실망한 알프와도 서먹함이 깊어지며 갈등이 커진다.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 그는 드디어 자신의 뿌리를 찾아 시골길을 달린다. 메노파 교회에서 자신의 성, 호스테틀러 Hostetler 의 옛 이름 호프슈테틀러 Hochstettler 씨를 만나 서로의 가족 성경에 적혀있는 가족 연대표를 확인하고 자신의 조상을 찾아낸다. 그리고 메노파 어른한테 자신의 미래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찾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라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저는 베를린에 남아서 룸슈프링아를 더 할거예요. 인생 최고의 발명은 인생 그 자체라는 걸 배웠어요. 베를린에서 해 봐야 할 일이 많아요. 제가 누구인지, 뭘 할 수 있을지를 찾고 있어요. 이런 세상을 보았는데 그냥 흘려보내면 아쉽겠죠. 집에 언제 갈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보고 싶어요. 나중에 봬요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서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영화의 시놉시스에서 미리 던져진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아 다소 밋밋한 전개를 인내한 관객들에게는 제이콥이 아버지한테 보낸 편지의 아리송한 끝맺음이 허망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관객들에게 제이콥이 되어 스스로 답을 찾아보도록 여백을 남겼음이 분명하다. 그에 대한 답은 제이콥이 공동체로 돌아가지 않고 베를린에 남아 새로운 미래를 펼쳐나갈 거라는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제이콥이 베를린에서 다소 길어지는 럼스프린가 기간을 마치고 고향 펜실베이니아로 돌아가 아미쉬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라 확신한다. 더하여 돌아갈 때는 멀미로 고생한 비행기 대신 300년 전 박해를 피해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건넌 조상의 숨결을 따라 배편을 택할 것이다.

 

그러한 예단은 제이콥의 복장에서 나온다. 고향 집에서 떠날 때와 베를린에서 알프, 아나와 한팀이 되어 배구 경기를 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제이콥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아미쉬 전통 복장을 벗어 던지지 않았다. ‘빈티지‘, ‘레트로라 조롱당하고 유혹과 혼란 속 죄의식에 사로잡히면서도 아미쉬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의 표출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 형제와 공동체를 잊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하여 그가 공동체로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의 뒷배에는 이미 잘 알려진 객관적 사실에 있으며, 이런 놀라운 사실 앞에 제이콥의 앞날에 대한 정답만큼은 여백으로 남겨 둔 시나리오 작가의 겸허함을 엿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