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쉬 역사, 종교

아미쉬 역사 (2) 피로 얼룩진 ‘순교자의 거울’

amishstudy 2023. 6. 22. 01:19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 성경 다음으로 소중히 하는 고서는 ‘The Martyrs Mirror, 순교자의 거울’이다 1660년 네덜란드에서 발간된 이 책은 1200페이지에 이르는 거대한 분량으로 그리스도 시대 이후 17세기 동안 기독교인의 순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제목으로 '피비린내 나는 현장 The Bloody Theater'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여기에는 순수한 기독교의 믿음을 지켜내기 위하여 희생된 기독교인들의 혹독한 박해와 처절한 순교의 사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종교개혁 당시 유아세례 대신 성인 세례를 고집하고 믿는 자들만의 순수한 교회를 주장함으로써 반사회적 과격 집단으로 내몰렸던 재세례파 교도들이 겪은 고난의 실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더하여 당시 네덜란드의 저명한 조각가이자 동판화가인 얀 루이켄 Jan Luyken이 정교하게 묘사한 104개의 동판화가 실려 혹독한 고문과 처형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후 여러 차례 다른 언어로 발간되면서 근래 발간 본에는 그 중 30개의 삽화가 실려있다. 따라서 이 책은 아미쉬 뿐만 아니라 메노나이트 Mennonites, 후터라이트 Hutterites 등 재세례파, 그중에서도 구습을 고집하며 Old Order 로 명명되는 교파 사람들의 필독도서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가정마다 소장되어있는 이 책을 늘 가까이 하며, 산 채로 물속으로 던져지고, 기름을 끼얹은 맨 몸이 불에 타면서도 종교적 신념을 지켜낸 조상들의 숭고한 뜻을 유훈으로 삼고 있다.

 

다음은 재세례파의 태동인 '스위스 형제단'이 결성된 지 두 해가 지난 1527년, 게오르그 바그너의 순교 사례로 '순교자의 거울' 416페이지에 실린 내용이다.

 

'에머리흐 Emmerich에 사는 게오르그 바그너 George Wagner가 바바리아 Bavaria의 뮌헨 Munich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믿음 때문에 붙잡혔다. 첫째, 목사가 죄악을 용서해줄 수는 없다. 둘째, 사람이 하느님을 하늘에서 데리고 내려올 수는 없다. 셋째, 목사가 성찬대에 올려놓은 빵은 하느님이나 그리스도의 육체가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양식일 뿐이다. 넷째, 물을 이용한 세례로는 어떠한 구원도 받을 수 없다. 그는 이러한 신념을 굽히지 않아서 매우 혹독하게 고문을 당했다. 그를 깊게 동정한 제후가 감옥으로 찾아와 평생 친구로 부르겠다고 약속까지 하면서 진심으로 타일렀다. 더하여 제후의 측근이 나서 그런 믿음을 버리라고 권고하면서 많은 것을 약속했다. 급기야는 그의 부인과 자녀들이 감옥에 있는 그의 앞에 불려왔다. 이처럼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의 신념을 바꾸려고 했지만 끝내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많은 목사와 여타 사람들도 역시 그를 찾아와 설득했지만 그는 확고했고 하느님이 그에게 일깨워준 믿음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는 화형을 언도받았다. 사형집행인의 손에 넘겨져 시내 한복판으로 끌려 나가면서 그가 말했다. '오늘 나는 온 세상 사람 앞에서 나의 하느님께 고해하리라'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처럼 기쁨을 얻었다. 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지도 않았고, 두려움 없는 눈으로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불길로 다가갔다. 사형집행인이 사다리에 그를 묶고 목에 화약이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를 매달았다. 그가 말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함께하소서' 그는 주변에 있던 기독교인들에게 고별인사를 전하면서 사형집행관에 의해 불길 속으로 밀어 넣어졌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바쳤다. 1527년 2월 8일이었다. 사형 집행 장소에서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또 다른 형제들을 붙잡으려고 한, 성姓이 아이젠라이히 폰 란트베르크 Eisenreich von Landsberg인 치안행정관이 그날 밤 갑자기 숨을 거두어 이튿날 아침에 그의 침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는 신의 저주로 이렇게 목숨을 잃었다.'

 

재세례파 교도 마티아스 메이어 Matthias Mayr 가 수장 당하는 장면 (1592년) - Martyrs Mirror p1090에 수록된 동판 삽화 사진

아미쉬 사람들은 거울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용모를 가꾸고 치장을 하는 일을 금하고 있기에 외모를 뽐내기 위한 목적으로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만의 거울이 있다. 그게 바로 조상들이 흘린 피로 얼룩진 󰡐순교자의 거울󰡑이요, 일상을 통하여 마음과 정신을 비추고 가다듬는 일깨움의 거울이다. 아미쉬 사람들은 그러한 거울을 들여다보며 온갖 박해와 고초 속에서도 종교적 신념을 지켜낸 조상들의 값진 희생을 배우고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새롭게 하고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온갖 고통과 수난을 당하며 숨을 거두는 절박한 상황 앞에서도 폭력으로 대항하거나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무저항 평화주의의 가르침도 배우고 있다. 그러한 일깨움을 유훈으로 삼아 그에 합당한 삶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그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값진 유산, 󰡐피로 얼룩진 거울󰡑 앞에서 함박웃음을 웃거나 실의에 젖어 눈물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조상들의 숭고한 희생을 욕되게 하는 일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미쉬 사람들이 항상 조신하며 감정의 기복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경망스러운 행동을 보이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음이 분명하다.

'Mirror'는 '거울'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본보기, 귀감 龜鑑'을 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처럼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에게 신앙인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순교자의 거울' 속에 비춰진 조상들의 희생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결코 그들의 역사를, 나아가 오늘날 아미쉬를 비롯한 재세례파의 경건한 신앙인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